한 달 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왔다. 모국어로 쓰인 글을 읽는 즐거움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사건이었다. 한강의 주요 작품들은 이미 애지간히 읽었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아마 향후 20년 정도는 들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의 뇌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컨텐츠 소비로 인한 감정적 힘듦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나날이다.) 그 대신 주변에서 한강의 인터뷰 기사나 팟캐스트 링크 등을 전해주어 오가는 길에 그의 긴 인터뷰들을 읽고 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신 안에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 질문들을 마주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라는 말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떠한 질문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
느즈막히 오전이 다 지나가 침대에서 일어나 팬케이크 구워 먹고 세탁기 한 번 돌려서 빨래 널고 청소기도 한 번 돌리고 운동화에 옷 가볍게 챙겨입고 나서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따뜻한 커피 한 잔 호로록 마시고 근처 뒷산에 올라 전망대에서 북한산에 지는 산 그림자 구경하고 둘레길 슬쩍 돌고 내려와 집 앞에서 뜨끈한 돼지곰탕 한 그릇 먹고 귀가하여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로스트 한 편 보고 잘 준비하는 완벽한 가을날. 어디 멀리 가는 여행보다 지금은 이게 딱 좋다. 이 모든 걸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있어서 더 좋아.
산책 앱의 한 화면을 가득 채운 15권의 책들이 공교롭게 모두 2024년에 구입한 책이길래 이것도 기념이다 싶어 써보는 포스팅. - 마르틴 베크 시리즈- 구병모 작가- 박완서 작가의 장편소설과 산문집-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 그 외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1. 마르틴 베크 시리즈 시작은 김명남 번역가의 마르틴 베크 10권 완역 기념 트윗이었다. 북유럽 추리소설의 근간이 되는 시리즈의 완역이 되었으니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잘 읽고 있다. 출퇴근길과 점심시간에 들고다니기 좋은 사이즈의 책인 것도 한 몫 한다. 어느 페이지에서나 접고 다시 열어 읽기 편해서 좋다. 살인수사과 경감이지만 직장인으로, 또 가정에서는 남편이면서 부모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는 점도 좋다...
지난달에 며칠 연차를 내고 짧게 제주도에 다녀왔다. 문제가 있던 feature를 마무리하고 다녀온 휴가였다. 노트북을 챙겨가지도 않았고, 휴가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휴대폰 알림을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프리랜서로 일한 지난 수 년 간 제대로 된 휴가를 가본 적도 없지만(비행기 표만 끊으면 일이 들어와 취소 수수료만 기십만원을 물었다), 짧게 국내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노트북을 안 들고 간 적이 없다. 한 번은 홍천인가를 가다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번역 의뢰를 받고 리조트 도착해서 내내 번역만 하다 온 적도 있다. 프리랜서를 하기 전 2년 간 다녔던 직장에서는 휴가를 가서도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전(!)에 데일리 업무를 해야하는 게 있었고, 두 번째 여름 휴가를 다녀온 다음 회사에 퇴사하겠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