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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무 이야기

김첨지. 2025. 5. 10. 10:57

1.
Paul Graham의 트윗을 보고 오랜만에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깨닫게 된 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젠가는 결국 그렇게 되겠지만) AI에게 글 쓰는 일을 맡기게 되면 잃게 될 것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글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직조되는지' 아는 감각이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지식이 사라졌던 건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옷감을 짜거나 그릇을 빚거나 바구니를 엮을 줄 아는 사람이 굉장히 드물잖아요. 하지만 이제 글쓰기가 그 분류에 들어가니, 그건 조금 묘합니다.

사실 제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사람들이 글쓰기를 멈추면 훨씬 더 큰 걸 잃어버릴까 하는 겁니다. 옷감을 직접 짜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진 않습니다만, 글쓰기란 곧 사고 그 자체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게 되면 그에 수반하는 사고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셈이죠.

교육 일선에서는 이 흐름을 막아보려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직시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건 힘들고, 사람들은 힘든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글을 쓰지 않을 거고, 그 글쓰기를 '강요받는' 아이들 역시 글을 쓰는 일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겠죠. 

결국 언젠가 글쓰기(와 그에 필요한 사고력)는 지금의 어떤 공예 같은 게 되어버릴 겁니다. 어려서 학교에서 잠깐 배우기는 하지만, 극소수의 뛰어난 전문가들만 그 탁월함을 유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하지 못하는 그런 일처럼 말이죠.

 
요즘은 블로그 포스팅보다 트위터에 아무 말이나 짤막하게 종종 적곤 한다. 트위터를 십여년 동안 했는데 남들이 쓴 트윗을 눈팅만 하다가 나도 무언가 끄적거리며 뱉기 시작한 것. 종종 내 블로그 내가 정주행하며 그래 그땐 이랬었지 하던 것을 이제 내 트위터 프로필을 따라내려가며 하곤 한다. 
 
2.
이직한 지도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3개월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식 계약을 했다. 수습 기간 중에 매니저에게 정식계약 체결 확정이니 안심해도 좋다는 언질도 받았으나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는 무엇도 믿지 않는 사람 바로 나 ㅋㅋ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니 편도 1시간이 넘는 통근길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업무도 이제 조금씩은 익숙해져 가고 있다. 쳇바퀴 도는 하루하루가 약간은 지루하다고 느낄 정도. 하지만 예측 가능한 삶이 주는 평온함이 지루하다는 감각을 뛰어넘는 안온함으로 다가온다. 생각해보면 학부 졸업 이후로 20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 동안 내년에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당연히도 이곳이 나의 평생 직장이 될 리는 만무하지만 이곳에서 최소 2년 여의 시간은 머무를 생각으로 적을 옮긴 만큼 이제 내년, 어쩌면 내후년까지도 지금과 같은 하루하루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3. 
요즘은 어디 멀리 나들이를 가는 거보다 내 주변의 일상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순간에서 마치 여행을 간 것 마냥 새롭고 신선한 환기가 된다. 가령 벚꽃이 만개할 무렵, 집 앞 가로수인 은행나무에서 새로 돋아나는 작고 귀여운 은행잎을 발견한 어느 하루와 같은 나날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집에 산 지도 벌써 2년 가량이 되었고,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 집에 드나들었기에 가을이면 베란다 창밖으로 노랗게 물든 거리를 보며 보낸 계절이 벌써 여러 해지만 겨울이면 잎을 다 떨구고 헐거벗은 나무에서 새 잎이 돋아나는 순간은 처음 목격한 것이다. 자그마하게 돋아나는 은행잎은 정말 귀엽다. 벚꽃이 만개하는 무렵이면 주변 은행나무를 한 번 유심히 봐 보시라. 
 
4. 
어제는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다. 죽기 전에 뭘 하고 싶을까, 무엇이 아쉬울까 잠시 생각해보니 아직 읽지 못한 많은 책들이 있는데 그걸 다 못 보고 가겠네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지금으로써는 가보지 못한 남미와 호주 땅이나 오로라로 물든 하늘 같은 건 의외로 크게 아쉽지 않을 것 같다. 
 
5. 
지난 2-3년 간 삶의 궤적을 바꾸느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리고 아직 갈 길이 구만리지만 그래도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 든다. 정확히 5년 전 이런 포스팅을 남긴 적이 있네. 또 한 번의 분기점을 지나왔다. 바라건데 앞으로는 한 번에 이렇게 많은 각도를 틀 지 않기를 ㅋㅋㅋ 인생의 굽이굽이 오르막과 내리막이야 있겠지만 어느 한 순간 각도를 3도 틀어버림으로써 1년 후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그런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지만, 또 모르지. 남은 인생이 참으로 길고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듯 하다. 
 

귀염뽀작한 은행잎(왼쪽)과 만개 후 낙화해가는 벚꽃(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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