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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내외하였네요

김첨지. 2020. 2. 7. 13:56

마지막 포스팅이 11월 말인데, 벌써 2020년 2월이다. 그간 나도 모르게 내외하였네. 

2019년은 어떤 한 해였나. 일 년 가운데 절반 가까운 시간을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냈고, 열흘 가량을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보냈다. 한창 일할 나이지만, '이짓도 나이 더 들면 못하겠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앞서 아프리카 대륙 출장을 왔다갔다 2년 정도 한 동기들이 "몸에 독이 쌓이는 것 같아서 더는 못하겠다"고 한 말이 무엇인지 통감했다. 장거리 비행의 피곤함과 8시간 시차가 다른 곳을 왔다 갔다 하는 일만으로도 정말 육체에 독이 쌓이는 것 같다. 하지만 또 어찌어찌 한 해를 마감했다는 것이 성취라면 성취. 

 

하지만 작년 한 해의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은 역시 독립이지. 부동산 투어, 계약, 두 번에 걸친 이사 후 집정리까지 하니 하반기가 끝났다. 작년 초 한 해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시작했는데 엉겁결에 2019년 목표는 독립으로 세웠고, 세우자마자 실행 완료되었다. 익숙한 동네지만 직접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는 동네로 옮겨와 시장과 마트, 운동할만한 곳 등 생활권을 차츰 구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사하면서 침실과 작업 공간을 분리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확실히 집중력이 더 높아졌다. (높아진 집중력으로 번역을 얼마나 하고 있냐는 건 다른 문제_-) 

매일 밥을 차리고 치우고, 청소를 하고, 주기적으로 빨래를 하는 등 이런저런 집안일들이 하루를, 일주일을, 한달을 살게 한다. 집안일을 할 때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출퇴근하지 않는 자의 일상이란 다들 비슷할 것 같다. 동생이 혼자 살던 살림을 고스란히 지고 온 터라 생활집기는 딱히 새로 살 것들이 없는 와중에도 필요한 것들은 틈새를 파고 든다. 며칠전에는 처음으로 법랑 냄비를 구입했다. 법랑이 porcelaine enamel 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법랑'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점차 한국어 무식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지. 

집에 화분도 하나 들여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들여다 보고 있다. 물티슈로 나뭇잎도 닦아주고, 오늘은 어디에 어떻게 새순이 나고 있나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설 연휴 때 부모님 집에 가있느라 이틀만에 집에 왔더니 그새 줄기 위치가 변해서 놀랐다. 매일매일 조금씩 변하는 것의 힘을 가까이에서 눈으로 살필 수 있어 좋다. 

 

2019년의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는 새로운 연애가 있겠다. 지난 삼십여년 간의 시간을 새롭게 알아가는 이가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그의 눈을 빌어 보는게 제법 흥미롭다. 그런 자각을 통해 내가 얼마나 다양한 인간들과 깊은 시간을 쌓아왔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노느라, 대학 시절에는 교회 친구들과 노느라 정작 내가 현재 속해 있는 곳에서는 별다른 소속감도 느끼지 못했고 친구가 많지 않았던 학창시절을 보내서 늘 친구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때는 몸의 어딘가라도 붙은 마냥 가까이 지내던 이들과 소원하게 된 관계도 있고, 각자 생활권이 멀어져 자주 못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지내는 와중에 통대를 다니며 만나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는 동료들까지 생겨 사교생활이 풍성해도 풍성해도 너무 풍성한 것 아닌지. 들락날락 출장을 다니는 덕에 특정 시기에는 만남이 원천 차단되다 보니 한국에 있는 시간 동안에 이 관계들을 다 돌보려니 그야말로 공사가 다망한 삶을 살고 있더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 일상을 지키는 노력을 수반해야 하기에 시소 널뛰기를 하고 있다. 

 

2020년의 목표는 체력 증진이다. 반복적인 장거리 비행과 시차 뒤바뀐 삶으로 깎어먹은 체력을 보강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이제 기초체력이 고갈되었다. 술도 조금만 먹어도 취하고. 맛있는거 많이 먹고 마시고 살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가뭄에 콩나듯 하는 집운동을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잡았으면 하고, 새로운 운동을 하나쯤 배우고 싶다. 프리다이빙을 생각하고 있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수강자가 썰물빠진 틈을 타 구청에서 운영하는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물살을 가르는 느낌을 이번에는 배울 수 있을런지. 

또다른 목표는 계절의 정취를 더더욱 느끼며 사는 거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사는 삶을 매순간 손에 쥐고 살고 싶다. 작년 겨울을 적도 근처에서 보낸터라 올 겨울 눈 한 번 제대로 내리지 않는 것이 야속했는데 며칠전 그래도 흩날리는 눈발을 봐서 행복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설산을 한 번 다녀오면 좋을 것 같은데 기회가 닿을지 모르겠다. 올 겨울이 안된다면 그다음 겨울이 또 올테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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