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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노벨상 수상작을 읽었다. 노벨상 탔다고 해서 책을 사 보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책을 주문하고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책을 받아보니 수상 발표 후 새로 찍은 16쇄 판본이었다. 


이 책을 뭐라고 이야기하면 좋을까. 그보다 먼저 나중에 이 책을 떠올리면 2017년 가을과 예술의 전당까지 왔다갔다 하는 출퇴근길, 그리고 토요일 오후의 조선일보 미술관 앞 카페가 생각날 것이다. 이렇게 떠올리면 그 시간, 그 장소가 떠오르는 책들이 있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생각하면 봄날의 교토가 떠오르고,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생각하면 한여름의 야쿠시마 섬, 그리고 가고시마가 생각난다. 하루키의 <우천염천>은 군산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고, <1Q84>는 2호선 출퇴근길과 평일밤 침대 위에서 마지막 장을 넘기던 순간이 기억난다. 

요즘 매일매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무용 연습을 보고 있는 비현실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 비현실적인 일과의 앞뒤로 책장을 펼쳐들면 1990년대 영국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갔다. 종이책이라는 물성이 가진 힘인 것 같기도 하다. 전자책 몇 권 읽어본 적 없기도 하지만 이만큼 끌려들어간 경험은 아직까지 없다. 책장만 열면 다른 시공간, 다른 이의 삶을 훔쳐볼 수 있다는 것, 이래서 내가 소설 읽기를 좋아했었지. 잊고 있던 감각 세포가 돌아온 듯 했다. 이런 기분을 참 오랜만에 느껴봤다. 


아직까지 이 책을 뭐라고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한번씩 호흡을 가다듬고 봐야 해서 책을 덮고 숨을 쉬고 창밖을 보고 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삶의 결정적 순간들이 어떻게 찾아오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하늘이 파랬던 날. 숨 쉴 것 같이 숨쉬던 날. 그런 하루에 무언가 찍-하고 갈라질 수 있고, 그런 순간은 다시 붙일 수 없고, 그대로 삶이 흘러간다. 노퍼크에 가서 되찾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이 모든 것이 허상이라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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