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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야기

김첨지. 2017. 8. 9. 16:02

지난주에 예정에 없이 술을 오지게 먹은 탓으로 이번 일요일 내 간을 가여히 여겨 이번 한 주는 인간적으로 맥주 한 방울 안 마시고 쉬어야지 했으나 간의 회복력이 왜이리 좋아. 이틀 쉬니 바로 술 생각이 나고 점심에 타이 식당을 가서 먹는데 맥주 한 잔(정확히는 한 병..)을 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때 순식간에 한 자기 합리화: 

1) 맥주 한 병은 술이 아니다. 음료다. 

2) 회복력이 빠른 나의 간과 건강 상태를 기뻐한다. 


첫 술을 먹은게 언제였을까.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고등학교 무렵에 집에서 엄마아빠가 한 잔씩 주셔서 마셔본 거 말고 본격 음주를 한 게 언젠지 첫 기억이 희미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바깥 음주를 한 건 확실한게 이미 고등학교 때 술먹고 아침에 등교를 못해봤었.... 점심시간에 겨우 학교를 기어가서 교무실 들려 선생님께 이제와서 죄송하다고 하고 교실로 들아왔는데, ㄷㅈ이가 술냄새 오지게 난다고 했었던 것이 술먹고 무언가를 못해본 첫번째 기억이려나_- 


음주 인생 약 15년 정도라고 잡고 무수히 많은 술로 시간과 돈을 탕진했지만 이제까지 black out이 되어본 적은 딱 두 번이 있었다는 것이 나의 나름 술에 대한 부심이었다. (심지어 두번째 블랙아웃이 바로 지난주다.) 숙취도 별로 없는 편이라 내가 술이 약하진 않구나 살았고, 숙취의 기준을 아래도 한번인가 쓴 거 같은데, 다음날 최소한의 정상 컨디션으로 일정 소화가 가능한지로 따졌을 때 손으로 꼽아본 적은 없지만 며칠 없었다. 

다만 술 먹고 위경련이 와서 병원 가서 링겔을 맞아본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회사 다닐 때였고, 한 번은 통대 3학기 다닐 때. 둘 다 스트레스 극심하고 평균 수면시간이 줄어들었던 때였던 것 같다. 처음 위경련이 왔을 때는 이게 뭔지 몰라서 밤새 끙끙대다가 아침에 출근 못하겠다고 회사에 이야기하고 병원 갔더니 위경련이라고 하며 링겔 맞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몇 년 텀을 두고 두 번째 위경련이 왔을 때 알았다. 아, 이게 나의 술병이구나. 몸상태가 안좋을 때 술을 오지게 먹으면 나는 위경련이 오는구나 알게 되었다. 첫 위경련이 왔을 때 이게 술병인지 몰랐던게 술먹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고 뭘 못먹다가 저녁쯤 되면 살아나서 정상 컨디션으로 정상적인 음식을 섭취한다. 그렇게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밤, 그러니까 술먹고 48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위경련이 왔다. 두 번째 위경련도 똑같은 과정으로 술먹고 다음날 하루 사망하고 정상컨디션으로 돌아오고 그 다음에 위경련이 오더라구. 그 이후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술 먹다가 어느 순간 술이 나를 마시는 것 같은 시점이 오면 이러다 죽지 싶어 멈출 수 있는 임계치를 알게 되었다. ㅋㅋㅋㅋ 


하지만 필름이 끊겨본 적은 거의 없기에 어느 순간에 내가 필름이 끊기는지 아직 임계치에 대한 학습이 안 되었다_- 

술이 취해도 귀가본능이 좀 장난이 아니어서 무조건 집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는 외대 앞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푸다가 꽂혀서 송도가서 와인을 몇 병을 마시고도 자고가라는 지인의 권유를 뿌리치고 그 밤에 택시 타고 집에 온 정도;; 송도에서 우리집까지 할증 붙어서 오면 4만원 넘게 나오더라 ㅋㅋㅋㅋ 하지만 이미 몇 년 전 술먹고 서울에서 택시 잡아타고 정동진도 가본 적 있는 저-_-;;; 송도 4만원 정도야.... 

여튼 집까지 제정신으로 기어와서 자는 버릇 덕분에 여태까지 필름이 끊겨본 적이 별로 없는 듯 하다. 두 번의 필름 끊긴 기억이 약 2시간-2시간 반 정도 아예 black out인데 이게 내가 어느 순간에 잠들었는지 모르게 내 집 아닌 곳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2시간이 타임워프해서 깜놀. 기억 안나는 시간 동안 잔게 분명한데 잠든 시점이 기억이 안난다. 처음 필름 끊겨본 날 아침에 개인수영 강습을 받던 때라 그렇게 2시간 자고 수영장 가서 수영하다 사망할 뻔한 기억... 2시간 강습이었는데 1시간 하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1시간 동안 수영장 베드에 널부러져 있다가 씻고 집에 가서 쓰러져 잔 기억...  



내 자신이 알콜중독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 이전에는 술을 자주 마시긴 하지만 술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술 안먹으면 또 안먹지 뭐, 하며 지냈었는데 집에서 혼자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술 없이 못사는구나 를 인정하며 알콜중독 초기임을 시인했다. 한국이 술에 너그러운 사회라서 이러고 사는 거지. 집에 술을 싹 없애보면 어떨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럼 뭐가 어떻긴 어때 나가서 사오겠지... 먹고 싶을 때 나가서 사오기 귀찮으니까 집에 일단 술이 떨어지지 않게 쟁여두는 거지. 아, 돈이 진짜 없으면 술을 못산다-.- 


지난 며칠 동안 지난 인생 반추하는 모멘텀이었어서 술 생각을 이리 길게 해봤다. 다음 편은 운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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