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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몰입

김첨지. 2022. 10. 14. 23:03

난 보통 하루에도 꿈을 몇 개씩 꾸거든. 꿈에서 내가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말했을 때 그날 아침에 꿈에서 깨고 나서 생경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 와, 내가 꿈에서 프랑스어로 말을 하다니. 나에게 진정으로 다른 자아가 생긴 기분이었어. 

그 때가 처음 어학연수로 프랑스를 갔을 때인지 그 다음에 교환학생으로 프랑스를 갔을 때인지는 지금 생각하니 잘 생각이 안 나. 둘 중에 하나인 건 확실해(라고 하면서 내 기억을 점점 못 믿겠긴 해.. 뭐 프랑스에서가 아니었더라도 프랑스에서 서울에 온 직후였겠지). 지금 생각하면 프랑스어라는 환경에 그만큼 내가 푹 담겨 있을 때였고, 그래서 꿈에서도 내가 한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말을 했겠지. 꿈의 배경 자체가 프랑스였거나. 

처음으로 꿈에서 프랑스어를 말한 이후로 꿈에서 프랑스어로 말한 적이 종종 있었어. 꿈의 배경이 프랑스적인 어떤 것(출장을 갔다거나)이면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이 더이상 처음 프랑스어로 말하는 꿈을 꾼 것처럼 생경하지 않았어. 마지막으로 프랑스어로 말하는 꿈을 꾼 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쓸데없는 꿈 이야기를 조금 길게 늘어놓은 건 내가 요즘 코딩하는 꿈을 꾸기 때문이야 ㅋㅋㅋㅋㅋ 오늘 해결하지 못한 어떤 것을 꿈에서 그 부분을 해결하는 코드를 치는 꿈을 꿨다니까? 내가 코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지금 한 달 반, 조금 길게 치면 두 달 됐거든. 코드 짜는 꿈을 처음 꾼 이래로 일주일 사이에 두세번은 꾼 거 같아. 내 24시간 중에 먹고 씻고 자고 하는 시간 외의 거의 모든 시간을 코딩(이라고 쓰니 또 범주가 굉장히 모호하군. 뭐 대충 퉁쳐서 이해하도록 하자)에 쓰고 있다는 얘기겠지.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을 떠나지 않아도 제3의 언어를 하는 꿈을 꿀 수 있다...! 

 

'일'이란 무엇인지 각자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돈벌이 + 내 시간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을 때 난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몰입'이라는 키워드거든. 몰입할 수 없는 일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 곤란한 것 같아. 하는 일 없이 직장 소재지에 나가 특정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나한테는 월급루팡이 아니라 거의 고문에 가까운 행위야. '몰입'에 대한 경험도 모두가 다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몰입은 시간의 상대성을 느끼게 해준다는 거야. 나는 평소에 배고픔이나 졸림 같은 원초적인 육체적 욕구를 아주아주 참지 못하는 편인데, 몰입하는 시공간에 들어서면 배고픔을 느끼지도 못하고 졸림을 느끼지도 못하더라고. 그 시공간을 벗어나면 바로 배고프고 바로 졸려서 일단 뭐라도 황급히 줏어먹고 바로 건전지가 빠진 기계처럼 잠들곤 하지만. 몰입의 강도가 꼭 100%, 혹은 그 이상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생산적인 노동활동을 할 때 몰입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건... 그냥 일을 안하고 싶어. 일을 안하면... (말을 줄인다)

유명한 더닝 크루거 곡선

더닝 크루거 곡선의 우매함의 봉우리조차 아직 채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거든.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서 이만큼 충만한 즐거움과 몰입을 느낀다는 게 너무 기뻐. 우매함의 봉우리를 넘어서 절망의 계곡이 오더라도 지금의 기쁨을 기억하고 싶어. 

 

통번역을 하는 시간도 무척 즐거웠거든. 그런데 나는 프랑스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통역과 번역이라는 행위를 좋아하는 거고 그 매개체인 '프랑스어'라는 언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본의 아니게) 프랑스 현대문학을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에도 느꼈어. 간단하게 한 줄로 아주 거칠게 얘기하자면 프랑스어, 보다 정확히는 그 언어로 만들어진 콘텐츠(소설, 영화, 광고, 음악, 기타 등등)에 묻어 있는 식민지성을 견디기 힘들었고, 프랑스어를 내가 직접 화자가 되어 소통의 도구로 쓰고 싶지 않았어. 프랑스어로 대화하고 싶은 상대를 굳이 찾아야 하거나, 어쩌다 찾아도 대화하고 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은 상대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통번역 일하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도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들과 특정 범위 이상으로 관계를 확장하고 싶지 않았던 건 언어 때문인지, 어쨌건 일로 만난 관계 때문인지는 몇 대 몇으로 가릴 수 없어. 뭐든 간에 그 모든 게 복합적이었고, 나는 내가 프랑스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사랑하지 않는 걸 계속 발전, 최소한 유지라도 해야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 같아. 

'프로그래밍 언어도 결국 외국어처럼 언어인가'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각 잡고 다시 포스팅할 기회가 있기를 바래. 하루 8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 결국 허리가 아파서 스탠딩 책상을 장착했거든. 서서 하는게 앉아서 하는 것보다는 낫다지만 서있든 앉아있든 같은 자세로 계속 있는 것 자체가 척추 관절에는 힘든 일 같아.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의 포스팅 거리를 남겨야겠어.

이런 말투로 포스팅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내가 요즘 소셜 게이지가 부족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투를 구사한 것 같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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