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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신중히 고르는 것 두 가지는 숙소와 여행지에서 읽을 책이다. 동선도, 식당도 내키는대로 하면 되지만 잠자리를 가리기에 숙소는 꼭 미리 예약하고, 또 다른 하나로 들고갈 책을 신중히 고른다. 요새는 사실 전자책을 보니까 여행지에서 책을 새로 살 수는 있다. 그래도 그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출발하기 전에 정해놓는 편이다.

보통은 여행지에서 해당 장소가 아닌 다른 곳의 여행기를 읽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길인지라 서사가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난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대체로 소설을 읽었다. 특정 여행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고, 나중에 그 여행과 장소를 돌이켜봤을 때 그 소설이 함께 묻어나는 건 꽤 근사한 일이다.

이번에는 급히 떠나느라 무슨 책을 가져갈지 고를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숙소 예약보다 먼저 한 건 전자책 구매. 배낭 하나 메고 종일 걸어야 하는 길이기에 종이책을 담아가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사랑해 마지 않는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중 이제까지 읽지 않은 두 권 중 하나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결제해 담아왔다. 정세랑 작가의 작품 중 보기 드문 소위 성장소설. SF 설정이 가미되지 않은 중고등학생 소녀 소년들의 이야기.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내는 십 대라는 시기는 인생을 통틀어 얼마나 반짝거리는 시기인지. 하지만 그 시기를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내면서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 폭력과 날 것의 잔인함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지. 몇 페이지 들추지도 않았는데 사뭇 깜짝 놀랐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일테지.

다른 얘기로 십대 시절의 나에 대해 오랫동안 꽤 많은 시간을 반추하며 살아온 덕인지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볼 때에야 비로소 그 시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 알 법한 것들을 현재를 통과하며 그 아름다움을 절실하게 느끼는 능력을 획득했다.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명암이 있기에 미리 깨닫는다고 꼭 모든 게 좋지만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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