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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분기점

김첨지. 2020. 5. 15. 14:11

과거에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의식적으로라도 잘 안하는 편이다. 어차피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데 그런 생각해서 뭐합니까? 오늘 하루나 잘 살 일이지. 하지만 그런 생각이 한 번씩 안 드는 건 아니고, 어제오늘이 유독 그런 날이기에 찌끄려보는 포스팅 되겠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COVID-19라는 공식적인 이름이 붙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코로나 원년인 2020년, 나의 지난 이십대를 돌아보면 인생에 두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대학 졸업반 무렵 인지심리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서 심리학 대학원을 가려고 했던 것. 고등학교를 부득불 이과로 졸업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입시를 말아먹은 것(물론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도 이 심리학 때문이었는데, 인지심리라는게 한국에서 공부를 더 하는게 한계가 뚜렷해서 정말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석사 이후에, 아니면 석사부터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했다. 그런데 나는 이 시기에 이미 두 번의 짧은 프랑스 체류 경험으로 프랑스 패치_-가 되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미국 유학을 감당할 돈은 없었기에 "미국을? 어케 가? 그럼 어차피 공부 제대로 못하는데 한국에서 석사 2년 해서 뭐해?"라는 생각이 들어 오갈데 없어졌고, 동대학원을 오라는 선생님 한 분의 찌질(낚시질도 아님)에 바로 낚여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프랑스 현대 소설을 공부했다. 인지심리학을 계속 공부했다면 저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 살든지 아니면 그러다 결국은 뛰쳐나와서 다른 일 하는 사람이 되든지 둘 중 하나였겠지. 

그 다음에는 프랑스 문학 공부하다 뛰쳐나와 언론홍보 일을 시작했다. 아, 이건 나랑 정말 안 맞아 라는 생각으로 뛰쳐나온 대학원이었기에 그다음 무슨 일을 하든 재밌게 시작할 수 밖에 없는 토대가 아주 잘 마련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꼭 그래서가 아니라 일 자체는 재미있었고,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엿본 세계들 다 흥미로웠다. 외국계 회사를 다닌 셈인데, 보통의 한국 기업은 가서 적응할 수 없으리란 걸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두 번째 분기점은 회사 퇴사 시점으로 이 시기에 계속 회사를 다니면서 홍보 쪽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길이 가지 않은 길이지. 외국계 회사 이직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었으나 프리랜서로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코로나 원년에 프리랜서 4년차(라고 해야할지 참 무색하네)가 되었다. 이 두번째 분기점에서 다른 길로 들어섰다면 한국에서 계속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가 지금쯤은 나름 경력 10년차를 바라보는 시니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겠지. 

오후 2시, 점심을 챙겨먹고 설거지를 한 뒤 이런 한가로운 포스팅이나 하는 내 삶을 애정하지만 이 삶에 따라오는 어떤 것들을 놀랍게도 지금에서야 직시하고 있다. 지금이 세 번째 분기점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낀다. 더 단단해지고 싶은데, 어떤 게 단단한 삶인지도 한번씩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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