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를 펴면 오십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름이 주루룩 나열된 목차를 보고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첫 장을 열었다.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의 대학병원을 거점 지역으로 그 주변을 지나가는 인물들의 일상, 찰나의 순간들, 때로는 긴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주 평범한 인물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이런 점은 과 닮았다. 을 읽으면서 여자친구들을 만나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소설로 읽기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있었다. 은 그보다는 엽편 소설 분량의 아주 짧은 이야기다. 인물과 인물이 마주치고, 특정 글귀가, 특정 장소가, 특정 영화가 구슬 꿰듯 꿰어져 나가는데 그 알이 어떤 알이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고 싶다면 앞장을 들춰본다. 그러면 그 인물이..
지금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오전에 클라이밍을 갔다가 샤워를 하고 나와서 연남살롱에 가서 소설을 읽으며 오후 한나절을 호젓하게 보내는 거다. 매번 마감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 to-do list를 적는데, 이번에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만나야 할 사람 to-do list를 이미 작성해 놨다. 물론 만나고 싶은 사람들 이름이 적혀 있지만 어쩐지 일 같이 느껴진다. 출장 갔다 4월에 온 이후로 아직 한 번도 못 만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건데, 작년 여름 내지는 가을에 만나고 안 본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건 전부 다 혼자 하는 호젓한 일들. 그리고 마음 편히 데이트다운 데이트하기... 그리고 해야 하는 일도 있다. 진짜 집 정리를 해야 한다_- 결국 이 집 살면서 이사짐 정리..
1. 서울에 온 지 한 달 반 가량이 되었다. 정신차리고 달력을 보니 5월 말일세. 봄이 끝나고 여름이 오는 이 계절을 사랑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지내다 오니 내가 얼마나 한 계절, 한 계절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더 크게 느낀다. 2. 애정하는 사람들과 술잔 기울이며 나누는 이야기들과 무대 공연이 그리웠다. 그래서 오자마자 국현무 안성수 감독의 을 보았고, 공연 첫째날에 보았더라면 이튿날 공연을 그 자리에서 예매해서 다시 보고 싶을만큼 좋았다. 공연 내내 열두 명의 무용수가 전부 단 한 번도 무대에서 떠나지 않고 숨쉬는 호흡마저 제어하는 흉통의 들쑥날쑥거림조차 아름다웠다. 공연 예술이 가지고 있는 생의 열기를 느끼고 싶어 무대 공연을 찾는데 그 에너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3년차 프리랜서 삶을 어찌어찌 이어가고 있는 나날이다. 당장 다다음달 뭐하며 살지 여전히 불투명한 나날이지만, 이건 10년차가 지나도 마찬가지라고 이미 1년차 때 이야기 들었으니 놀라울 일은 없다. 재미있는 통역 일을 하고 있는 주간이라 어제 4시간 정도 자고 오늘 오전, 오후 일정 꽉 채워서 뛰고 왔는데도 뭔가 뇌 속의 스위치 한 켠이 내려가지 않아 잠이 오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가 이럴바에야 그냥 포스팅이나 하자 싶어 컴퓨터를 켰다. 내일도 아침 일찍부터 일정이 있지만 뭐, 어차피 이미 새벽 1시 반이다. 지나고나니 통대 2년 시절만큼 밀도 높은 시간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이 시기는 마치 영유아 시기 같아서 이 시기가 지나면 더이상 뉴런이 확장되지 않는 것 마냥 절대..
십여년만에 파리를 방문했다. 출장 다니며 파리를 경유할 때 두어번 파리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느라 시내에 나가 지인을 만난 적도 있고, 저녁 식사를 한 적도 있긴 했지만 이렇게 며칠을 묵으며 여행자처럼 다닌 적은 처음이었다. 돈없던 학생 시절 힘들게 지냈던 프랑스가 아니라 돈 싸들고 돈 쓰러 가니 매우 재미있었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았으련만, 지내는 동안 하루 빼고는 날이 좀 흐린 편이라 아쉬웠다. 흐린 하늘도 매력적인 곳이긴 하지만. 따뜻한 곳에 있다 가서 그런지 유독 더 춥게 느껴지기도 했다. 프랑스, 독일 사는 지인들은 날씨 풀린거라고 따뜻하다고 하던데 나만 추워했다_- 1. Pho 14 - 129 Avenue de Choisy, 75013 Paris 2007년 파리에서 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