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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낙

김첨지. 2017. 12. 20. 19:44

하루키가 말하는 작고 가벼운 행복은 "좋아하는 여자 아이와 맛있는 걸 먹는 인생"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텐데, 제 삶의 행복도 오랜 세월 여기에 있었다. 


국현무 일이 끝난 이후로 삶에 낙이 없다 는 말을 종종 내뱉었다. 국현무가 나에게 남기고 간 흔적... 돈 벌면서 즐거웠던 모든 순간이 3일짜리 본공연 무대로 증발되어 사라졌다. 국현무 이전에도 큰 낙 없이 살았던 건 똑같은데 즐거움에 발담그고 나왔더니 그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진걸까? 낙이 없다 낙이 없어 하며 지낸지 한 달 반. 제대로 못 쉬고 바로 학원 수업 나가고 번역 작업에 돌입하면서 결국 컨디션 최악에 이르렀다. 

바로 전 포스팅에 썼던 안 좋은 몸 상태는 여전히 계속 안 좋지만 병원 못 가봤고, 여기에 더해 목감기를 얹었다. 월요일에 몸이 으슬으슬 춥고 쑤시는 듯 하여 몸살감기가 오려나보다 했는데 다음날 바로 기침나고 머리 아파. 흑흑. 다행히 열은 없어서 약 사먹고 버티고 있다. 쉬어야 낫는데 쉴 수가 없는 삶이여.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대부분 다 마찬가지리. 


하여튼 몸도 안 좋고 마음도 안 좋아 즐거운 일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1) 먹고 마시는 즐거움

2) 여행하는 즐거움 

이 두 가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 2017년 한 해는 이 두 가지가 소거된 삶... 1번은 그래도 간혹가다 어쩌다가 한번씩 기회가 있었지만 여행은 정말 1월 거제행 이후로 한 번도 못 갔다. 그러고보니 국현무도 국현무인데, 진짜 안되겠어서 2월 방콕행 비행기 끊어놓고 이 비행기 티켓 날리게 되면서 약간 바닥 찍은 거 같다. 여행가고 싶어도 못 가... 없는 돈에 어떻게 갔다와보려고 했는데 못 가... 


2017년 한 해가 프리랜서 1년차로서 고군분투하는 시간이었다면, 2018년은 2년차로서 일과 삶의 균형, 시간과 정신의 분리, 일 모드/삶 모드 스위치 on/off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실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스리슬쩍 한 해 계획을 세워본다. 

시간은 연속적이고 분절되지 않았는데 인간이 제멋대로 주말과 주중을 분리하고, 1월 1일 새해를 기념하는 바람에 그 기류에 휩쓸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스리슬쩍 세우는 한 해 계획을 연말에 되돌아볼 때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은 어딘가 모르게 뿌듯한 구석이 있다. 

이건 작년에 세운지도 모르게 세웠던 계획을 전부 다 이룬 걸 보고 눈물이 찔끔날 정도로 내 자신이 기특해서 하는 이야기. 


먹고 마시는 즐거움도, 여행하는 즐거움도 없지만, 한 해를 제법 성실히 차근차근 살아온 데에서 삶의 낙을 찾아야겠다. 올해 못 한 일들은 내년에 또 하면 되니까. 영영 못할 일들은 아니니까.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알아가는 한 해였다. 잊지 못할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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