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몇 시간 후면 서울 가는 장장 열 몇 시간의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이 또 오는구나. 늘 그렇듯 이번 출장에서도 이제까지 말로만 듣던 일들을 몸소 체험하였다. 그렇기에 모든 시간이 의미가 있었다. 새로운 입력이 없는 시간, 모든 것이 반복에 지나지 않는 시간을 내가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다. 일단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지금은 새로운 입력을 소화하기에만도 충분히 벅차니까. 이번 출장 중에는 처음으로 청중이 200명이 훌쩍 넘는 연회장에서 순차통역을 해보았다. 통대에서 하던 모든 수업에서 그리도 중요했던 통역 브리프. 그것은 실제로도 중요했다ㅋㅋㅋ 어떤 행사에 어떤 청중에게 어떤 연사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통역이 제공되는..
열 시간이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면 제일 무서운게 잠을 못자는거다. 하지만 이건 이제 수면유도제를 들고 타거나 비행시간 따라 공항에서 한 알 먹고 타면 어쨌든 잠을 청할 수는 있다. 물론 얼마 못자고 깨긴 하지만 그래도 뜬눈으로 말똥말똥 가는 생지옥은 이제 남의 일이다. 현대의학 만세여. 그다음으로 힘든게 기내의 미친듯한 건조함. 이번에 이걸 위한 꿀팁을 전수받았다. 나는 화장품을 피지오겔 로션을 쓰는데 이런 순한 로션 류랑 면봉을 들고 타서 건조할 때마다 면봉에 로션을 묻혀 콧구멍 안쪽에 발라주는거다! 마치 입술 건조할 때 립밥 같은거 발라주는 느낌으로. 이게 무진장 효과가 있다!!! 코 점막이 수분 가득하고 이게 딱 바를 때 말고도 한동안 지속되니까 완전 살 거 같더라. 비행기에 내려와서 코를 풀면 액..
카페인을 끊으면 잠자는 행태가 달라지는지 실험해 보기 위해 커피를 끊었다. 사실 카페인과 수면의 상관관계를 보려면 홍차도 끊어야 하지만 차와 커피를 동시에 끊는 건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차는 마신다... 가급적 허브티, 시나몬, 유자차 등을 마시려고 하지만, 홍차 마시고 싶으면 그냥 홍차 마신다. 녹차는 요즘 안땡겨서 녹차는 안 마신다. 7일차 중간 보고를 하자면 입면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플라시보일 수도 있단 생각은 늘 한다. 종속 변수와 독립 변수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는건 아니니까. 다만 잠이 온다는 느낌이 들 때 하던 일을 다 접고 그냥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잠이 온다는 느낌이 오랜만인 건지, 아니면 커피를 끊으면서 잠자는 행태가 어떤지 내가 나를 관찰하려고 드니까 ..
SNS 아카이브라는게 있기도 전, 싸이월드 시절보다 훨씬 더 전에, 가장 멀리는 아마도 미취학 아동 시절, 삶의 어떤 장면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사진 앨범에 있는 이미지도 아니고, 왜 이런 몇몇 특정 장면들이 마치 비디오 클립처럼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이유없이 문득 떠오르는 생의 장면들이 있다. (음성이 함께 있는 장면도, 음소거인 채로 이미지만 있는 장면도 있다.) 오늘 문득 떠오른 장면은 중고등학생 때 새학년이 되면 새 교과서를 과목별로 교실 앞에 늘어놓고 한 줄로 서서 한 권씩 챙겨가게 했었다. 그럼 새 교과서들을 몽땅 짊어지고 집에 갔다. 그러면 그 날은 문학 교과서나 사회과목 교과서를 읽다 잠드는 날이었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걸 보면 천상 문과 사람이다, 나. 또다른 기억은 학부..
기록할만한 무더위도 이제 제법 선선해졌다고 느끼는 정신 승리를 하며 잘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더워서 진이 빠지는 것보다도 잠을 내리 못자니까 힘들었는데 이제 잠도 평소처럼 잔다. 운동을 새로 시작하면서 삶의 사이클이 좋아졌다. 역시 돈 내고 체육관을 등록해야 해. 돈주고 자전거 사니까 삶의 질이 높아진 것처럼... 혼자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깔짝깔짝 스트레칭마저 안한지 두 달이 넘었고, 그 앞에도 출장 왔다갔다 하며 대단한 운동이라고는 하나도 안하던 삶을 청산하고, 실내 클라이밍 강습을 시작했다. 난 왜 무슨 클래스를 등록하면 쩔이를 담당하는가...! 몸치가 확실하다. 겁도 많고 몸쓰는 감각은 정말 하나도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쌓여 몸쓰는 뉴런 회로를 뚫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마냥 재미났..
트위터에서 누가 그랬다.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영업도 내가 하고, 실제 업무도 내가 하고, 구매도 내가 하고, 회계도 내가 하는 거라고. 정말 맞는 말이다. 아무도 해주는 이가 없는데, 다 필요한 일이라서 내가 한다. 물론 혼자다 보니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들고 품이 든다. 그런데 꼭 이런 류의 일을 하는 시간에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게 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일을 하는 시간도 일을 하는 거라고, 꼭 통역과 번역을 하는 시간만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고 나에게 되뇌어 주고 있다. 그래서 하는 포스팅 되시겠다. 7-8월. 바야흐로 통역 비수기. 7월 초 대구 행사를 끝으로 정말이지 아~무런 행사가 없군요. 그래서 제주도로 한 주 휴가를 다녀오고,..
나처럼 뭘 안 사는 사람도 없지 하면서 가계부를 들춰보면 그래도 뭔가를 사긴 산다. 기초화장품은 얼굴/몸 합쳐서 로션 하나만 쓰고 있는데 그거 다 쓰면 또 쟁여놔야지, 샴푸, 바디젤, 가글 같은 생필품은 때마다 안 살 수가 없으니까. 그 외에도 봄철에 셔츠 하나, 여름철 원피스 하나, 샌들 하나를 샀다. 옷, 신발 안 사는 거 같으면서 계절마다 뭔가 하나 정도는 사긴 산다. 주로 이전에 입던 게 떨어져서 버리면 사긴 하지만_- 이런 주기적 소모품 말고 산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나 자전거!!!!!! 이전에 쇼핑 이야기 포스팅한 것 중에 아무 것도 안 샀지만 5월에 결국 큰 마음을 먹고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결과는 대!만!족! 자전거는 역시 나에게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따릉이 따위 한 번도 안..
평상시 책을 읽는 장소는 집이다. 거실 쇼파 아니면 내 방 침대. 어떤 책을 '어디서' 읽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금정연의 는 워낙 얇은 책이기에 누구라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겠지만, 요즘은 뭐든지 오래 집중을 못하는 나날이라 하루에 책 한 권을, 그것도 장소를 옮겨가며 단번에 다 읽은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요며칠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 많은 날이다. 병원 보호자 침대에서 자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제 앞으로 부모의 보호자가 내가 되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몸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집에서 이런저런 자잘한 물건들을 챙겨서 가져다 줄 사람이 오늘은 아무도 없어서 집에 잠깐 들르는 길에 예약도서로 와있다는 문자를 받고 도서관에 들러 금정연의 를 빌렸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