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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샤사 출장 중

김첨지. 2019. 8. 18. 22:32

1. 

태어나서 처음 적도 아래 남반구에 와있다. 보통은 호주나 뉴질랜드를 떠올리겠고, 서른살 이전에 남미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대학생 시절의 나도 내 첫 남반구가 킨샤사일 줄은 몰랐다. 작년 DR콩고 사업 하나가 호되게 엎어지고, 이번 새로운 프로젝트 출장도 항공권 다 끊어놓고 출국 3일 전 한 번 엎어진 탓에 콩고 땅은 못 밟아보는건가 했는데 결국 왔다. 

외국인, 특히 아시아인은 현지 운전수 없이는 걸어서 1-2분 거리도 못 걷게 하고, 차를 타도 문을 모두 잠그고 출발해야 하며 창문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곳. 수도 킨샤사가 이 정도이니 지방은 아예 엄두가 안 난다. 지난 5월부로 WHO가 에볼라 바이러스 위험 국가로 지정했지만 아직까지 킨샤사에는 의심 및 확진 확자가 안 나왔다. 의심 환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는 즉시 전체 인원이 바로 출국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곳. 그렇지만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창 심한 동북부 지역에서 서부 맨끝에 있는 킨샤사까지는 마땅한 국내 이동편이 없는 현실이니 적어도 내 출장 기간 동안 급한 조기출국은 없을 것 같다. 

건기인데도 생각보다 덥지 않고 호텔방은 심지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너무 추워서;;; 가지고 온 옷을 다 껴입고 자도 춥다. 긴팔 잠옷을 혹시 몰라 한 벌 챙겼는데 이거 없었으면 진짜 얼어죽었을 것 같다. 긴팔잠옷에 양말 신고, 후드티 껴입고, 목에 스카프 두르고 자도 코끝이 시렵다. 적도 근처에서 8월 중순에 추위에 떨 줄이야... 

 

2. 

이번 출장은 오기 전에 워낙 걱정을 많이 했었다.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올까말까 고민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다행히 막상 와서는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아침에 눈떠서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 직전까지 내내 통역을 하는 일정이라 호텔에 들어오면 씻고 기절해서 8-9시간을 자고 있다. 그러면 또 다음날이다. 심지어 믿을 수 없게도 토요일에(!) 현지 공무원들이 출근을 해서 추가 근무를 했다. 

이런 일정 중에 새삼 한 번 더 확인한 나의 장점은 어지간한 상황에서 떨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청중 200명이 넘는 포럼 행사 진행 및 패널 순차통역에서도 생각보다 긴장되지 않았었는데 이때가 정점이었다. 이제는 예정에 없었던 30인 회의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들은 대로 말한다' 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할 뿐이다. 같이 출장 온 통역사와 둘이서 현장에서 서로 파트를 나눠서 통역을 했는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양측이 나를 거쳐가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구축되어 가고 공동의 목적이라는 하나의 접점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에서 희열을 느낀다. 통역할 때만큼 오롯이 집중을 하며 몰입하는 시간이 또 있을까? 통역이라는 업에 대한 나의 외사랑이 외사랑이 아님을 확인받는 건 같이 일했던 고객이 다시 나를 찾을 때. 그리고 같이 프로젝트에 온 타업체가 명함을 요청하며 추후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할 때 뿐이다. 이런 씨들이 실제로 열매를 맺기까지는 무한한 기다림이 남아있지만. 어떤 껍데기도 없이 맨몸으로 있는 나를 찾는 사람들. 

1년차에 가장 큰 고민이 영업과 홍보였는데, 지금은 '나에게 맡겨진 일을 잘 하자'라는 원론적인 방향에 집중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밖의 다른 방법들이 정말 효과가 있기는 한건지. 요율에 대한 부분은 3년 동안 많이 정리가 되어서 이제는 현실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해야 수입이 더 느는 상태인데 어떻게 일을 더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시간이 고정적이지 않다보니 투잡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투잡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통역과 병행 가능한지, 무엇일지 모르는 그 투잡은 몇 년이나 할 수 있을런지... ㄷㅈ이는 이번 출장 이후 진지하게 통역을 때려치는게 어떠냐고까지 했다. 내가 이 외사랑을 접을 수 있을까? 애매한 재능이 가장 큰 저주라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3. 

소프트스킬과 하드스킬에 대한 생각은 다음 기회에 포스팅 해야지. (이렇게 해놓고 안 한 포스팅 백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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