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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피프티 피플>

김첨지. 2019. 8. 8. 21:39

목차를 펴면 오십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름이 주루룩 나열된 목차를 보고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첫 장을 열었다.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의 대학병원을 거점 지역으로 그 주변을 지나가는 인물들의 일상, 찰나의 순간들, 때로는 긴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주 평범한 인물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이런 점은 <82년생 김지영>과 닮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여자친구들을 만나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소설로 읽기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있었다. <피프티 피플>은 그보다는 엽편 소설 분량의 아주 짧은 이야기다. 인물과 인물이 마주치고, 특정 글귀가, 특정 장소가, 특정 영화가 구슬 꿰듯 꿰어져 나가는데 그 알이 어떤 알이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고 싶다면 앞장을 들춰본다. 그러면 그 인물이, 그 글귀가, 그 장소가 거기에 있다. 퍼즐조각 같은 책이다. 

진부하기까지 한 서사지만 어쩐지 너무나 우리네 이야기라 한숨에 읽기는 쉽지 않다. 중간중간 숨고르기를 하며, 때로는 책장을 덮었다가 다음날, 혹은 다다음날 열어서 이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오십명의 얼굴 중 매력적인 인간을 만나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고구마 같은 인간을 만나 한숨쉬기도 했고, 웃긴 인간을 만나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한 명 한 명을 흐릿하게 책 전체에 고르게 숨겨놨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떠올랐지만 책을 다 읽고 며칠이 흐르자 귀신같이 희석되었다. 역시 책장을 끝까지 덮기 전에 포스팅을 했어야 했어. 하지만 지금에라도 몇 글자 남겨놓고 싶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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