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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주말

김첨지. 2018. 12. 30. 05:44

1. 

11월에 보름 가량을 모로코에서 보내고 서울에 1주일 돌아와서 다시 카메룬 두알라로 온 지도 벌써 4주가 지났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며 살아본 적은 처음인데 이제 시간이 좀 지나 몸이 적응을 했다. 시차적응과 장거리 비행을 연속해서 하는 등 몸에 무리가 가는게 당연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가장 몸에 무리가 되는건 자고 일어나는 시간만이 아니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뒤바뀌는 신체 리듬의 교란이다. 인체의 항상성은 대단하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하루 24시간, 한 달 30일, 1년 12개월을 나눠놓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지구가 자전하고 달이 바뀌고 지구가 태양 한 바퀴를 돈다. 인간의 몸도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간다. 서로 8시간 차이가 나는 시간대에 연달아 왔다갔다 하고나니 서울에 있는 동안 신체리듬이 완전히 망가졌었고, 그덕에(?) 카메룬에 오자마자 시차적응은 바로 했었다. 그런데 그게 결코 다는 아니었다. 

십대 초반 처음 생리를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초반 1-2년이 지나고부터 굉장히 일찍 규칙적인 생리주기가 자리 잡았다. 이게 깨진 적이 딱 두 번 있었는데, 그 중 첫번째가 학부 때 프랑스에서 잠깐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때였다. 한 달 완전히 생리를 건너뛰고 그 다음달 평상시 하던 때에 생리를 해서 이 때는 한 해 동안 11번만 생리를 했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가 바로 이번 두알라 도착하자마자였다. 모로코에서 생리가 끝나고 열흘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생리를 바로 또 시작하더라. 하루하루 리듬이 무너지니 한 달 리듬이 무너지는건가 싶다. 이 다음은 이제 사계절 감각이 무너질 때인데 이번 겨울을 여름나라에서 나게 되었으니 내년에 또 어떨까, 후후... 이렇게 계절을 건너뛰어본 적은 예전에 미국 시애틀에서 여름 한 달을 보낸 적 있었는데 그다음 해 여름에 한국에서 더위 먹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에 적응해 있던 몸이 한 계절을 뛰어넘으면 그 다음 해에 더 힘들어 하는 거구나 그때 느꼈었지. 운동 시작하고부터는 더위, 추위에 상대적으로 강해졌는데 내년 겨울에는 그래도 더 조심해야겠지. 


2. 

같은 하루하루를 사는게 지루하지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냥 또 반복되는 하루를 살 수 없으니 그 안에 변주가 필요하지. 얼마만큼의 변주와 얼마만큼의 반복을 넣을 것인가를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 가는 게 좋다. 그 대가가 불안과 싸워야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싸우리. 

며칠 전, 지금 계약하고 온 업체 내에서 일정이 뒤집어질만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났는데 하나도 동요하지 않는 나를 보며 프리랜서 2년차 맷집이 제법 단단해졌군 생각했다. 당장 나의 일정이 바뀐건 아니지만 동료 통역사를 비롯하여 다른 출장자들의 일정이 완전히 바뀌었고 이게 조만간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일희일비하는 삶이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이런 생채기 정도에는 일말의 타격도 없구나. 지난 가을 콩고 건이 엎어지면서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나를 보며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 정도 수준의 일정 뒤집기는 애교가 아닌가 싶다. 콩고 때도 정말 열받었었던 건 미래비용과 다른 거래처(학원)와의 신뢰가 완전히 깨지게 되었을 때였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이제 다 매몰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정신승리를 진짜로 이뤄냈구나 확인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 2년의 통대 생활이 이미 어느 관점에서는 엄청난 매몰비용이기 때문에ㅋㅋㅋㅋ 하지만 그 덕에 불안과 싸워서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삶으로 진입했지. 유일한 승전보, 라고 자위해야 살 수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 개념은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야. 


3.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았는지 새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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