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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을 다녀왔다

김첨지. 2020. 10. 22. 20:26

따뜻한 남쪽 도시에 다녀왔다. 통영에 가기 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수면양말을 꺼내신고, 비데 변좌 온도를 높이고, 후리스 후드에 패딩 조끼까지 겹쳐 입고도 춥네 생각이 들만큼 서울은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진 탓에 통영은 서울보다 따뜻하기야 하겠지만 무슨 옷을 가져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껴입고 벗을 생각으로 반팔부터 청자켓, 코트까지 한 벌씩 죄다 챙겨갔다. 낮에는 반팔만 입고 돌아다닐 정도로 따뜻해서 첫날 서울에서 입고 간 옷은 그대로 가지고 올라왔지만 그래도 얇은 옷 위주로 챙겨가서 다행이었다. 남쪽은 과연 남쪽이었다. 

올 초 아빠 환갑을 맞아 가족들과 발리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작년 여름 제주 이후 1년 2개월만의 여행이다. (발리는...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여행으로 치고 싶지가 않다...) 통영에서 1시간 40분 가량 배를 타고 간 매물도에서 본 풍경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노르웨이 피요르드 이후 눈 앞의 풍경이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섬 트래킹은 홍콩 라마섬에서 처음 그 매력을 알았다. 산봉우리를 오르면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그 바다를 한쪽에 끼고 걷는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그리고 땀 흘린 이후에 해수욕장에 몸을 담그면 그것은 천국... 매물도는 해수욕장은 없었고, 해수욕에 적합한 계절도 아니었지만 바다에 몸을 누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평일이었던지라 3시간 반 가량 섬을 돌면서 마주친 사람은 처음 배에서 같이 내린 아빠와 두 자매(이들은 선착장에서 잠깐 마주한 다음 바로 폐교가 되어버린 야영장이자 구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는 캠핑족으로 서로 마스크를 끼고 있었던 초반 진입로 이후 만날 일이 없었다), 중년 부부(혹은 커플), 전망대 보수 공사를 하던 국립공원 직원 세 명이 전부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산을 오르고, 숲을 걸으며 마음껏 킁킁거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여행지에 가면서 그 여행지가 아닌 다른 곳의 여행기를 읽는 행위를 좋아하는데, 이번에 챙겨간 책은 박완서의 티벳과 네팔 여행기인 <모독>이었다. 생각만큼 많이 읽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호텔방에 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또는 바다에 반짝거리며 부서지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읽는 티베트 이야기는 여기 아닌 다른 곳을 꿈꾸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한 햇살로 가득채우고 돌아온, 충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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