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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

김첨지. 2020. 8. 11. 14:04

블로그에 간단한 근황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다. 두 달 정도 정신없이 흘러가서 일상을 챙기기조차 여의찮았다. 8월 초가 되도록 무더위는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굉장한 호우가 덥쳤다. 연초 역병이 전세계를 돌아 각종 산업이 마비된 와중에 유례없는 긴 집중호우라니, 2020년은 대단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는 이것이 일상이 될런지 모르겠다. 해가 나지 않아 세탁기를 돌리지 못한지 열흘 정도가 지나자 도저히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 빨래를 돌려 거실에 건조대를 펴고 제습기까지 동원해 빨래를 말렸으나 도통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아 4월 설치한 에어컨을 첫 가동한 8월이었다. 에어컨을 한 번 켜고 나니 그 이후로 거의 매일 켜고 있다. 냉방보다 주로 제습 모드로. 이 정도 날씨는 더 이상 장마라고 부를 수 없고 천재지변 수준이 아닌가 싶다.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한 해다. 나도, 날씨도. 통대 동기 덕에 대사관 통번역직 파트타임을 6~8월 3개월 간 하며 표류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었다.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시간을 꽤나 여러 번 보내온 탓에 한치 앞도 모르겠는 순간을 겪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한 줄기 빛조차 들지 않는 적은 처음이다. 그 와중에 6월 말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며 한 달 보름 정도가 그냥 휩쓸려 지나갔다. 이제서야 조금 그 이전에는 이런 일상을 보냈었지 하는 기분으로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꽤나 자주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만나던 사람은 아닌지라 그의 부재를 느낄 때, 그때 다시 수시로 슬퍼하되 내 일상이 그의 부재로 인한 슬픔에 매몰되지 않게 하자고 다짐한 이후 조금씩 거리두기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문자 그대로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는 일은 여전히 허망하다. 

역병에 몇 개월 동안 문을 닫았던 지역 도서관도 다시 문을 열었고, 학교 도서관도 예약제가 아닌 직접 서가에서 책을 찾아 대출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빌려온 장편 소설 한 권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이렇게 한 호흡으로 책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간 읽은 이러저러한 책들에 대한 짧은 감상평을 남길까 해서 글쓰기를 눌렀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버렸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기차를 타거나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도시에서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낯설어 하며 하룻밤을 자고,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고 마시며, 자연을 느끼며 걷고 헤엄치고 싶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날은 언제가 될까. 여행 관련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쓰는데 이 카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다.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공항 라운지 PP 카드, 인천공항 편도 교통편 제공, 해외 로밍 지원 등. 먹고 살 돈도 급급한 와중에 여행이 사치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떠나고 싶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내일도 생각이 안 나면 모레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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