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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파리

김첨지. 2018. 12. 5. 21:27

환승을 하면서 파리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오후에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근처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요즘은 정말 아무 것도 찾아보지 않고 해외를 그냥 나간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찾아보기 귀찮아서 ‘가까우니까 그냥 택시타지, 뭐.’하고 생각했고, 공항 택시들은 당연히 시내까지 나가는 손님을 태우려 하기에 한 차례 승차거부를 당하고_- 다음 택시 기사가 태워줘서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12년 전 파리에서 한 학기를 살았을 때는 학생 때라 돈이 없었기에 택시 같은건 탈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의 파리와 하룻밤 머물기 위해 내린 오늘 사이의 시간 차가 새삼 실감이 났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택시를 타보았다. 2km 남짓한 짧은 거리인데도 8유로(1만원 살짝 넘음)가 나오는 후덜덜한 교통비. 하지만 남의 돈(업체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반나절 머물 기회가 생긴 셈이니 이정도 택시비 쯤이야 낼 수 있다. 


호텔방에 들어와 짐을 내려놓으니 3시가 조금 넘었다. 바로 직전 출장과 이번 출국 사이에 겨우 일주일 밖에 없었고, 지난 출장이 끝나자마자 걸린 몸살감기가 아직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십년 만의 파리인데 시내에 나가지 않기는 아쉬웠다. 어차피 저녁도 먹긴 해야 하니까 고민하다 시내를 나가기로 했다. 항공권을 받았을 때부터 반나절이 있는걸 알았어서 파리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할까 하는 생각을 안해본 바 아니나, 당일에 컨디션이 어떨지 몰라 아쉽지만 연락을 하지 않고 왔다.


해가 일찍 지는 초겨울의 시작인지라 어딘가 구경을 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도 꼭 한 군데 관광지를 가본다면 st. chapelle 성당을 가고 싶었다. 근처 생제르망은 파리에서 학교를 다녔던 곳이라 저녁 식사도 하고 동네를 둘러보기에도 적당할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나갈까 생각을 해보았으나 시내까지 나가는 택시비는 50유로를 훌쩍 넘을 것이 분명하기에 RER를 탔다. 파리 살았을 때도 별로 탈 일이 없었던 RER. 정액교통권 없이 당일 편도 티켓을 사니 10.30유로다. 프랑스 교통비 수준에 비하면 한국 대중교통(택시 포함)은 정말 저렴하다. 


생제르망에 내려 생샤펠에 도착하니 4시 31분. 4시 30분이 입장 마감이라고 안 들여보내준다-_- 하지만 입구 직원에게 내일 파리를 떠나는데 들여보내달라 사정을 해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성당 앞 티켓 부스가 이미 마감을 해 결제를 할 수가 없어 사정을 한 것이 도루묵이 되어 곧장 나왔지만...
학교 근처 동네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익숙한 골목들이 나온다. 10년만에 왔는데도 모든 풍경이 그대로인 것이 프랑스답다. 학교 다닐 때 가끔 가곤 했던 식당에 들러 식사를 주문한다. 나혼자 추억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 city pharmacie에 들러 구경을 하다 여행용 아벤느 폼클렌저를 두 개 샀다. 몽쥬약국이 유명한 줄은 알지만 파리 살 때도 먼 동네(라고 적으니 조금 웃기다. 파리 시내라고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인데.)여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이 약국도 드러그 스토어에서 파는 화장품들이 제법 싸서 늘 사람이 득시글득시글한 곳이다. 예전같으면 이런저런 화장품을 샀겠지만 요즘은 몇년째 쓰는 화장품이라고는 로션 하나, 선크림 하나, 이게 전부라 살 게 없었다. 100ml 아벤느 폼클렌저(투명한 파란색 제품)가 2.98유로니 한국 가격을 검색해 보지 않아도 매우 저렴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샤를드골 면세점에서 개당 7유로가 넘더라. 조금 후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파리 공항 면세점은 다른 공항 면세점보다 훨씬 비싸다. 


학교는 st. sulpice 성당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성당 광장을 지나가다 성당에 들어갔다. 예전에도 조용한 곳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종종 왔었던 곳이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베들레햄 마굿간 모형을 만들어놨다. 매년 서강대 정문에 만들어 놓는 그 모형을 올해는 못보는 대신 여기서 대신 보는군. 


성당을 나와 골목들을 휘적휘적 걸어다니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시킨다. 파리에 와서 커피 한 잔 안하고 갈 수가 없지. 프랑스 커피는 한국에서 재현불가능이다. 밤이라 잠 못 잘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들어간 카페에 디카페인 커피가 있다. 예전에 좋아하던 카페들을 떠올려보았다. 오페라 근처 한 곳, 루브르 근처 한 곳. 여기서는 조금 거리가 있어 가보지는 못했다. 그 근처에 가면 길이 생각날까? 싶었다. 카페 이름 같은건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 날씨 앱에서는 8도라고 하지만 공기가 차서 해가 지니 으슬으슬 춥다. 파리 카페라면 모름지기 테라스에서 거리를 향해 일렬로 앉아 사람 구경하는 맛이지만 몸을 녹일겸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파리에서 한 끼 식사를 해야한다면 제일 가고 싶은 곳은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는 쌀국수집이다. 파리에서 잠시잠깐이라도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바로 그 쌀국수집. 태어나서 먹어본 쌀국수 중에 가장 맛있는 쌀국수집이다. (베트남은 못가봤지만 라오스와 태국은 가봤다. 그래도 파리 쌀국수집이 제일 맛있어.) 그런데 그 근처는 딱히 둘러볼만한 곳이 없기에 일단 생제르망 쪽으로 온 것. 학교 다닐 때 걷던 익숙한 골목길들을 다시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쌀국수집을 갔다가 택시 타고 호텔로 가? 하는 생각도 한 번 해봤지만, 아무리 나라고 한들 쌀국수 한 번 먹자고 택시비를 10만원 쓰는거는 아닌 것 같고, 몸 컨디션도 아직 100% 회복이 안 된 마당에 추운 저녁 무리하지 말자 싶어 그만뒀다. 그리고 이번 출장이 끝나고 한국 들어가는 길에도 파리 경유를 하는데 그때 반나절 틈이 있으니 시내 나가서 먹고 와야겠다 생각을 하며 쌀국수집 영업시간을 검색한다. 다행히 아침 9시부터 영업을 한다. 나가서 먹고 올 수 있겠군. 


잠시잠깐의 추억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RER에 몸을 싣고 호텔로 돌아온다. 리셉션에 공항 가는 셔틀이 있냐고 물어보니 호텔 바로 앞에 공항가는 무인전동철이 있으며, 무려 4분마다 한 대씩 다니고 공항까지 5분밖에 안걸리며(택시보다 빠름ㅋㅋ) 무료라고!!! 공항 근처 힐튼, 노보텔, ibis 등 묵는 분들은 CDGVAL을 타시면 되겠다. 저는 몰라서 택시타는 바보짓을 했다_-


서울에 있는 일주일 동안 서유럽 시간대에 맞춰 자고 깨고를 했기에 저녁 시간이 되니 바로 잠이 온다. 깔끔하게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났다. 일주일 동안 멍하게 산 보람이 있군. 완벽 시차적응이다. 


조식을 먹고 짐을 챙겨 공짜셔틀(!)을 타고 공항에 온다. 인천공항에서 사려고 생각해둔 위스키가 있었는데(할인쿠폰까지 받아둠), 파리에서 공항 밖으로 나가는 경우에는 다시 공항에 들어올 때 술을 수하물에 부쳐야 한다고 하더라. 인천에서 부친 수하물을 최종목적지에서 찾기로 했기 때문에 술을 살 수가 없었다. 흑흑... 파리공항은 모든게 비싸지만 3개월 동안 마실 술 한 병을 안 살 수는 없지. 프로모션하는 제품들을 매의 눈으로 훝어 한 병을 구입한다. tmi일 수 있지만 이미 이 포스팅의 모든 문장이 tmi이기 때문에ㅋㅋㅋㅋ 발베니 16년 트리플캐스크 기준으로 대한항공 기내면세점이 115달러인데, 파리 샤를드골에서는 110유로나 한다. 마침 집에 있는 발베니를 얼마 전에 비워 리필해야 했기에_- 지난달 대만여행을 다녀온 가족들에게 부탁해 대만공항에서 85달러인가에 사왔기 때문에 기억한다. 


이렇게 파리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비행기에 오른다. 만나고 싶은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언제 와도 여전한 곳이 지구 상에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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